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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보아 작성일20-10-14 13:23 조회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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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인천] 김현서 기자= (인터뷰 ①편에 이어)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김상현이 KIA에서 SK로 트레이드 당시의 솔직한 심정과 이어 야구를 그만두게 된 과정에서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Q : 2013년 5월, KIA에서 SK로 트레이드되면서 또다시 고향 팀을 떠나게 됐을 때 심정은 어땠나.

A: 솔직히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었다. 일주일 경기 끝나고 월요일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아침 10시에 전화가 와서 트레이드됐다고 하더라. ‘거짓말 아니냐’고 되묻고는 3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충격을 크게 받아서 나도 모르게 멍때렸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아내를 깨워서 짐 싸라고 말했는데 처음으로 집을 마련해서 이사한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 트레이드됐다고 하니 아내도 충격을 많이 받았더라. 어쨌든 트레이드됐으니까 (인천으로) 가는데 ‘기아에서 왜.왜.왜.왜, 못한 건 못한 거고 왜.왜.왜.왜’ 이러면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Q : SK로 트레이드된 후, KIA가 한동안 하락세를 보였는데?

A: ‘김상현의 저주’도 떴었고 몇 게임 지고 그랬다는데… 나한테 문제가 있나? (웃음) 또 희한했던 점이 나와 트레이드되는 선수마다 야구를 그만뒀다. 해태에서 LG로 트레이드됐을 때 맞트레이드 상대였던 방동민 선배는 공 하나 던지고 야구 인생 끝내시고, LG에서 KIA로 트레이드될 때 맞트레이드 된 강철민 선배도 몇 경기하다가 그만두시고. 현재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선수가 송은범이다. (웃음)

Q : KT를 끝으로 프로 무대를 떠나게 됐다. 야구를 그만두게 된 과정에서 아쉬움은 없었는지.

A: 아쉬운 점은 많다. (은퇴하게 된 과정에서) 안 좋은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 상황을 해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뒤늦게 한번 (해명)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선택을 잘못했던 것 같다. Q: 어떤 선택을? 해명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확실히 만들었어야 했는데, 너무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다 보니까 언론에도 공개를 안 했던 것 같다. 기자분들도 만났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 싫었던 부분이 기자분들이 (한쪽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를) 써내니까 내가 해명을 한다 해도 기사가 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되게 친한 기자분들도 있었는데 그분들마저 올렸으니까.

Q: 그렇다면 기자에게 직접 연락해볼 생각은?

A: 연락을 하긴 했었다. 기자분들도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오셨겠지만, 그때 상황이 아닌 상황이다 보니까 해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된 거다. 그때부터 해명을 하고 뭐를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당시에는 내가 너무 기죽어 있다 보니까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Q: 구단과는 어떻게 정리된 건가?

A: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임의탈퇴 해제 후 (KT와) 복귀 계약서까지 다 쓴 상태에서 복귀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팬들이 안 된다는 제스처가 있었나 보더라. 구단이 그런 부분을 설명해주면서 (복귀 계약서를) 쓰긴 했지만 못 받겠다고 했다.

Q: 그때 상황에 대해 구단에는 제대로 이야기를 했다는 건가?

A: 그렇다. 구단에서도 복귀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시려고 많이 (노력을) 하셨는데 팬들 입장에서도 그렇고… 그때 일을 변호사를 투입해서 다시 정리하는 상황이었는데 언론이 너무 세다 보니까 뒤집으려고 해도 뒤집을 수 없더라. 그런 부분이 안되니까, 구단도 팬들도 (복귀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결국 다른 조건으로 마무리했다. 그때 복귀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A: (그 당시) 선택을 잘못한 것에 대해 뉘우치고 있고, 팬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구단과 이야기하고 해명했으면 달라졌을 텐데… 팬들은 그런 상황이 나왔다는 자체로도 실망을 많이 하셨을 텐데, 오해가 없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코치 생활을 하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야구 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팬들에게 너무 잘해주고 싶다.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려고 하다 보니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아직 살아있으니까. 팬들이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
“타이핑 답장, 실망·허탈” 유족 반응에… 악플 난무 ‘2차 가해’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이래진씨 제공
지난달 서해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의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명예를 돌려달라”며 호소한 편지에 대한 답장이 전해진 가운데, 유족 측이 실망감을 토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유족을 비방하는 악성댓글(악플)이 이어져 ‘2차 가해’ 우려를 낳고 있다.

14일 오전 페이스북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 그룹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일부 민주당 당원은 문 대통령의 답장에 실망했다는 유족을 향해 “월북 의심을 받는 자가 영웅인가”라면서 “대한민국 역대 어느 대통령이 일반인에게 위무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냐”고 유족을 비난했다.

이 당원은 “업무가 바쁜 대통령께서 회의 석상에서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편지까지 보냈으면 고마운 줄 알아라”라고 유족을 탓했다. 이밖에도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월북한 게 자랑인가”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어이없고, 무지의 극치다” 등 유족을 비방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앞서 유족 측은 문 대통령의 답장에 대해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수준의 내용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문 대통령의 답장을 전달받은 지난 13일, 손편지가 아닌 컴퓨터 타이핑으로 작성된 A4용지 1장짜리 편지가 등기우편으로 이군에게 전달됐다고 전했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대통령이 그동안 방송에서 수차례 밝힌 내용인데, 더 추가된 대책이나 발언은 없었다”며 “편지가 처음 도착했을 땐 먹먹한 마음에 뜯어보는 것도 망설여졌지만 막상 내용을 보니 실망감과 허탈한 마음이 앞섰다”고 토로했다.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는 “문 대통령이 직접 답장을 쓴다고 했지만, 타이핑된 편지를 보냈다. 최소한의 성의도 없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6일 문 대통령이 이군의 편지에 대해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취지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전했다. 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해양경찰이 여러 상황을 조사 중이다. 해경 조사 및 수색 결과를 기다려보자”며 “어머니, 동생과 함께 어려움을 견뎌내기 바란다”고 유족을 위로했다.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문 대통령의 답장이 당시 입장에서 나아간 점이 없다는 점을 들어 실망감을 나타냈다.


북한 피격 사망 공무원 이모씨의 형 이래진씨(왼쪽)가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에게 동생 이씨의 아들이 작성한 원본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김예령 대변인은 “타이핑된 편지는 친필 사인도 없는 무미건조한 형식과 의례 그 이상도 아니다”라며 “북한에는 성심과 성의를 다해 종전선언을 속삭이면서도 정작 애가 타들어 가는 우리 국민에게는 희망 고문만 되풀이하는 대통령에 유가족과 국민들은 자괴감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군은 문 대통령에게 자필 편지를 보내 군경의 발표로 월북 의심을 받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명예를 되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또 “아빠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때 이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아빠를 지키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고 원망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당시 이 편지를 두고 일부 포털사이트와 친여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월북자인 네 아버지에게는 명예가 없다”며 이군을 조롱하는 글이 올라와 2차 가해 우려가 나왔다. 이군의 편지가 삼촌인 이래진씨를 통해 공개된 점을 들어 “형이란 자가 돈에 눈이 멀어 조카를 앞세웠다”, “저걸 과연 아들이 알아서 썼을까. 사망자 형이나 그 뒤에 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배후설을 제기하는 댓글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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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지난 6일 “이군의 공개편지 관련 기사에 이군과 이래진씨에 대한 허위사실 댓글을 달아 명예를 훼손한 네티즌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고발장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대검찰청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유족을 향한 허위 비방성 악플은 계속되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스포츠서울 정하은기자]성매매 알선·상습도박 등 혐의를 받는 그룹 빅뱅 출신 승리가 두번 째 공판에서도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부인했다. 이에 재판부는 정준영, 유인석 유리홀딩스 전 대표 등 총 22명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재판을 이어가기로 했다.
14일 오전 10시 경기 용인시 소재 지상작전사령부에서는 승리에 대한 2차 공판이 진행됐다. 승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횡령,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성매매 알선 등), 외국환거래법위반,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성매매) 등 총 8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선 공판에서 승리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제외한 다른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공판에서도 승리는 정준영, 최종훈 등이 속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보낸 사진(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에 대해 “싱가포르 유훙업소 종업원에 위챗으로 전달받아, 단체방에 공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원정 상습도박과 관련해서는 상습성이 없다고 반박했으며, 횡령 혐의에는 “얻은 이익이 없고 개인취득이 아닌 브랜드 사용계약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첫 공판 때 승리 측 변호인은 8개 혐의 중 유일하게 인정한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승리 측 변호인은 군검사 측이 제시한 몽키뮤지엄 홍보사진 등 새로운 증거 등 증거목록 다수의 증거채택에 부동의하며 방어권을 행사했다. 이에 재판부는 성매매 알선 및 성매매, 불법촬영 혐의 관련 증인으로 유인석, 정준영, 김인철 등 7인,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 관련 증인 6인,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 관련 증인 7인(중복) 등 총 22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승리가 받고 있는 혐의와 증인의 규모가 방대해 추후 공판은 성매매 알선 및 성매매, 불법촬영 혐의 관련 증인 심문으로 오는 12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jayee212@sportsseoul.com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4일 임시이사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로써 53년 역사의 현대차그룹은 3세 경영 시대를 맞게 됐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4일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로써 1967년 옛 현대그룹 계열사로 출발한 현대차그룹은 창업자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고(故)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명예회장에 이어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는 이날 오전 7시 30분 온라인으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정 수석부회장의 회장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각 사 이사회는 안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현대차그룹은 설명했다.

정의선 시대 열렸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립자의 장손(長孫)인 정 신임회장은 1994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뒤 26년 만에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다. 2018년 그룹 수석부회장에 취임했고, 올해부턴 그룹 주력인 현대차 이사회 의장을 맡아 그룹 경영과 대외 대표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해 왔다.

정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전 세계 그룹 임직원에게 발표한 영상 취임 메시지를 통해 첫인사를 전했다. 취임 메시지의 제목은 ‘새 장(章)의 시작(Start of a New Chapter)’이었다. 그는 “범 현대그룹 창업자이신 정주영 선대 회장님, 현대차그룹의 오늘을 이룩하신 정몽구 명예회장님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계승해 미래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신임 회장이 14일 오전 전세계 임직원에게 보낸 영상 취임 메시지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이어 “현대차그룹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결실을 세계 고객과 나누며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며 ‘인류·미래·나눔’의 그룹 혁신 지향점을 제시했다.

정 회장은 최근 미래 차 변혁 과정에서 발생한 품질 문제를 의식한 듯 “고객 행복의 첫걸음은 완벽한 품질을 통해 고객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의 모든 활동은 고객 중심이 돼야 하며,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종조부, 기아차 창립자도 언급
여러 차례 강조한 그룹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서도 다시 언급했다. 정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인류의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 시티 등을 현실화해 인류에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몽구(오른쪽)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세계 5위의 자동차 전문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정의선 신임 회장은 선대의 업적을 계승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중앙포토
정 회장은 ▶주주·협력업체·지역사회와 결실을 나누고 ▶수평적 소통과 자율을 기반으로 열린 조직문화 구현을 촉진하며 ▶기업활동이 인류에 기여하고 다시 그룹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구축 등의 목표도 제시했다.

창업자 정신을 강조하면서 기아자동차 창업주 고(故) 김철호 회장을 언급한 것도 눈에 띄었다. 1999년 인수해 자동차 전문 그룹의 기반이 된 기아차의 역사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뿐 아니라, 작은 할아버지인 정세영 회장, 사촌인 정몽규 회장 등 현대차의 오늘을 있게 한 이들을 모두 언급했다.

총수마다 ‘창업자’처럼
3대째를 맞는 현대차그룹의 총수들은 모두 ‘창업자의 방향성’을 제시해 왔다. 정주영·정세영 회장이 ‘포니 신화’로 국산차 시대를 열었고,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5위의 자동차 전문기업으로 키웠다.

총수마다 시대적 과업을 달성한 만큼 3세 경영자인 정 회장의 책임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경영에 참여해 그룹 최고경영자(CEO)로서 활동해 왔지만 본격적인 그룹의 방향성을 제시한 건 2018년 수석부회장에 취임하면서다. 아직 본인의 경영 성과를 입증할 시간이 부족하단 의미다.

테슬라로 대표되는 미래 차 스타트업들은 기존 완성차 시장을 발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테슬라의 첫 크로스오버 차량 모델Y. 사진 테슬라

선대의 경영 판단이었지만 중국 시장의 과잉 투자, 미래 차 변혁에 늦은 점 등도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테슬라로 대표되는 미래 차 스타트업의 약진과 GM·폴크스바겐·도요타 등 기존 ‘완성차 공룡’의 변신도 숨 가쁘다. 특히 경쟁 완성차 기업과 달리 글로벌 연합체제에서 빠져 있는 것도 부담이다.

산적한 과제, 미래 불투명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구조를 해결하지 못한 점도 정의선 시대의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2000년 현대차그룹에서 계열 분리하는 과정에서 지분구조를 탄탄히 만들지 못한 게 원인이다.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지 않는다면 2018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겪었던 것처럼 ‘제2의 엘리엇 사태’를 겪을 수도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3% 의결권 제한 등 정부의 기업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점도 코 앞에 닥친 과제다.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은 2018년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했다.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진 엘리엇매니지먼트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화를 선언했지만 격변하는 미래 차 시장에서 향후 5년은 생존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다. 전문가들은 ‘애자일(agile·민첩한)한 변신과 대응’을 주문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지도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단 점에서 그룹 회장 취임은 바람직한 판단”이라며 “친환경 에너지, UAM 등 미래 기술 분야에서는 국내의 규제에 얽매이지 말고 해외에서라도 신속하게 연구·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래의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아직 내부에서 합의와 소통의 과정이 부족하다”며 "거대한 미래 차 변혁 과정에서 현대차가 갖지 못한 걸 싸고 효율적으로 확보하려면 외부와의 협업, 제휴도 중요한데 이 또한 소통의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이유진의 어떤 독일] 미테구청 철거 명령 중지 가처분 신청 배경과 맥락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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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명령을 받았던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행정명령 중지 가처분 신청으로 일단 강제철거 위기를 넘겼다.

독일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e.V.)가 미테구청과 베를린시 공공예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달 28일 제막 이후 일주일 만에 철거 명령을 받았다. 코리아협의회는 12일 철거 명령 중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으며, 이에 따라 14일 기한의 철거 명령은 중지된 상태다. 법원 결정까지는 2주 정도가 걸릴 예정이다.

13일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에서는 슈테판 폰 다쎌(Stephan von Dassel) 미테구청장이 나와 이 기간을 이용해 논의를 이어가자고 밝혔다. 예술과 문화, 자유의 도시에 설치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타 지역과는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 이유진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세운 코리아협의회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논란에 직면해 6년 전 기사를 다시 읽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와 나눈 인터뷰 기사다. 한 대표는 그 당시부터 독일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울 계획을 밝히며 전범국의 역사를 가진 독일 내에서 활동하는 어려움을 털어놨다. (관련기사 : 독일 정치인들이 일본처럼 '망언' 하지 않는 이유 http://omn.kr/792s)

이후 6년 동안 활동 영역은 더 넓어졌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전시 성폭력 문제, 소수 민족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 연대했다. 한일간 민족주의 감정에 머물지 않고 베를린에서 전 세계 시민사회와 교류했다. 지역주민과 소통했고, 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여성 인권과 폭력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코리아협의회가 평화의 소녀상을 공공장소에 세울 수 있었던 힘이다.

9월 29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한 이들을 보자. 이번에 철거 명령을 내린 미테구청의 재교육·문화·환경·자연·도로·녹지관리국 담당자인 자비네 바이슬러가 직접 참가해 축사를 했다. 나치의 여성 수용소였던 라벤스부르크 기념관 전 관장 인자 에쉬바흐, IS의 성노예 범죄 피해를 입은 야지디족 베를린 여성의원회 대표 니지안 귀나이, 연대하는 세계를 위한 재분배재단 여성분과 베레나 프랑케도 축사에 나섰다. 그 외 수많은 지역 시민단체 관련자들이 참가했다. 베를린에 서 있는 평화의 소녀상은 '한일전'을 상징하지 않는다. 세계 시민사회와 여성인권의 상징으로 확장되어 있다.


▲ 13일 베를린 코리아협의회 사무실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기자회견
ⓒ 이유진


미테구청의 철거명령이 부당한 이유

평화의 소녀상이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세워졌다는 잘못된 정보가 떠돌지만 평화의 소녀상은 정상적인 절차와 허가를 거쳐 세워졌다. 미테구청과 시 공공예술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1년 간 설치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다. 베를린 공공장소에 세워지는 예술작품은 보통 1년 기한으로 설치된 이후 평가를 거쳐 연장된다. 코리아협의회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맥락과 의미 등을 담은 13장짜리 신청서를 냈다. 허가와 설치 과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막식에는 미테구청의 담당자가 와서 축사까지 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평화의 소녀상 철거 공문이 떨어진 건 제막식 일주일 후인 지난 10월 7일. 일주일 내(14일)로 철거하지 않을 시에는 강제철거하고 그 비용을 단체에 청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1개월 내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강제 철거 효력은 중지되지 않는다. 오직 법원의 행정명령을 통해서만 철거 명령 효력을 중지할 수 있다.

미테구청은 '비문의 내용'이 한일 문제이며, 독일과 일본과의 관계에 부담을 초래했다고 철거 명령 근거를 댔다. 비문이 문제라면 비문 수정 및 교체를 요구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단번에 철거라는 결정을 내렸다. 기한도 일주일을 줬다. 독일은 철거 업체와 약속을 잡는 데만 일주일이 더 걸리는 곳이다. 관청의 명령이 얼마나 강압적이고, 한편으로는 다급했는지를 보여준다.

독일의 한 관청에서 도시 건축 허가 등을 담당하고 있는 문기덕씨는 13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미테구청이 내린 즉시철거명령(Sofortige Beseitigungsanordnung)은 태풍에 나무나 건축물 등이 쓰러져 보행자에게 위협이 있을 때 취해지는 조치"라면서 "구청 또한 일본과의 외교 문제가 이유라고 밝힌 것처럼 굉장한 압력이 들어간 거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다. 운동의 방법이나 방향성을 떠나 독일정부와 지자체에 규탄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평화의 소녀상뿐만 아니라 그 어떤 예술 작품이라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정식 허가를 받아 설치한 작품에 대해 내려지는 폭력적인 공문을 문화예술계 쪽은 표현과 예술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인다.

베를린조형예술가연합(Berufsverband bildender künstler*innen berlin e.V.)은 12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민주주의 국가들이 예술의 자유를 위협하는 데 큰 우려를 표한다.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베를린은 예술과 문화에 있어 중요한 도시이며 이 자유를 지켜야 한다"면서 "공공장소의 예술작품은 다른 나라 정부의 압력에 의해 철거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
ⓒ 이유진


독일과 일본의 외교관계

9월 28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직후 일본 정부는 전 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29일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고, 지난 1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 영상통화를 하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독일본대사관도 베를린 시의회에 관련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과 독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것만 이정도이니 배후에서 얼마나 많은 시도가 있었는지 가늠할 만하다.

미테구청의 철거공문에는 이러한 일본의 '노력'이 정확하게 반영되어있다.

"독일과 일본 관계에 상당한 부담을 초래하였음"
"일본정부의 거센 반응이 있으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
"우호적 관계에 있는 양국 간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떠한 일방적 판결도 내려서는 안 되고, 독일 군인들의 성폭력 범죄 역시 담겨야 한다는 것"
"독일연방공화국의 외교정책상의 이해관계..."
"이미 독일의 대일본 외교관계에 구체적인 문제가 발생했음"
"기존의 도시 간 협력관계도 위험에 처했음"

이쯤 되면 일본의 논리도 보인다. 평화의 소녀상을 한일 외교 문제, 나아가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국가와의 외교 문제로 압박하고, 해당 지역이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일본 도시와의 관계로 압박한다. 미테구는 현재 히가시오사카, 쓰와노, 신주쿠 등 3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외국 도시 중에는 일본과 가장 많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미테구청의 철거요구는 일본이 압박한 결과다. 시민사회 활동에 대해 일본 정부가 명시적으로 개입했고, 독일의 지자체가 두 손을 든 것이다. 슈페판 폰 다쎌 미테구청장도 이날 시위에서 "베를린 거주 일본 시민들로부터 많은 항의서한을 받았고, 연방정부와 베를린시의 거센 압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러한 일본 반응이 시간문제일 뿐 충분히 예측되었다는 점이다. 독일에는 이미 평화의 소녀상이 두 곳에 세워져 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사유지 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의 강력한 압박으로 결국 비문이 철거됐다. 그 평화의 소녀상은 그곳에 왜 서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비문 없이 서 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비문을 보자.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수많은 소녀들과 여성들을 끌고 가 성노예를 강요했다. 이 평화의 상은 소위 '위안부'의 고통을 기억한다. 1991년 8월 14일 침묵을 깨고 세계적으로 그러한 범죄의 재발을 반대하는 생존자들의 용기를 기리는 것이다. 이 상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기부해 코리아협의회의 위안부 분과가 '평화의 소녀상 연합'과 함께 세웠다."

일본 정부가 비문을 문제 삼았던 지난 경험을 봤을 때 비문 내용을 좀 더 전략적으로 고민했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미테구청은 철거공문에 '독일군의 성범죄도 다루어야 했다'는 입장을 두 번이나 밝혔다. (부당한) 철거 명령을 내리면서 윤리적으로 보이기 위한 면피용 문장이지만, 비문에 대한 고민은 분명 아쉽다. 코리아협의회의 행정명령 중지 가처분신청과 미테구청장의 이날 발언으로 볼 때 비문 내용 확장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13일 오전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지역 주민
ⓒ 이유진


독일에서도 공감을 얻으려면

독일에서 민족주의는 파시즘과 연결된다. 순수 아리안족의 영역을 지키는 민족주의가 바로 나치의 근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독일 국기를 흔드는 것 자체를 불편해 했던 독일이었다.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한일문제와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해석하는 건 이곳에서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독일은 일본과 같은 전범국가다. 일본에 비해서는 과거 청산을 훌륭히 해냈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그건 피해자 국가의 힘에 따른 결과일 뿐 독일 내에서도 비판적인 시선이 크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당시 과거 청산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의 발현이고, 동시에 '우리가 모두 가해자였다'는 인식에서 그 문제를 계속 언급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독일은 시스템과 교육으로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독일 너희는 훌륭하게 과거청산 했으니, 일본에 똑바로 하라고 한마디 해줘'라는 자세는 독일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국보다 훨씬 친하고 각별한 친구 사이에서 말이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을 '한일전' 혹은 독일 과거와 비교해서 다루는 것보다 여성 보편의 인권과 세계 시민사회의 의미로 다루어야 하는 이유다.

코리아협의회도 정확하게 그 지점을 강조한다. 평화의 소녀상 설치 과정이 그랬듯 지키는 과정에도 연대의 손길이 이어진다. 코리아협의회가 진행하고 있는 공개서한 서명에는 라이프치히대학 일본학과, 트리어대학, 튀빙겐대학, 베를린자유대, 훔볼트대학 등 독일 대학은 물론 히로시마대학, 도쿠시마대학 등 일본 대학 소속 교수진,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 등 현지 정당, 독일 과거청산을 다루는 기억책임미래 재단 전 이사장 등 주요 교육, 정치, 종교, 시민 사회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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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열린 '베를린, 용기를 내! 평화의 상은 머물러야 한다(Berlin, sei mutig! Die Friedensstatue muss bleiben)' 시위에서는 코리아협의회에 연대하는 다양한 단체들과 지역주민 300여 명이 모여 미테구청 앞으로 행진했다. 독일 현지 언론과 일본, 한국 미디어도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보였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촉발한 토론과 논쟁, 그것만으로도 이 평화의 소녀상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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